배고프지 않다던 이의 정직한 뒷모습
12월의 신북은 공기부터가 날카롭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마치 잘 갈린 칼날처럼 서늘해, 코끝이 찡해질 때쯤 삼화국중역 2번 출구를 나섰다. 불과 몇 걸음 지나지 않아 Jie Si Lv Tai Bei San Chong Guan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층고가 높게 뻗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묵직한 붉은 벽돌 벽과 낮게 드리워진 금속 조명들이 산업적인 세련미를 풍기며 방문객을 맞이했다. 차가운 도시의 소음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어지는 감각이 좋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무료 스낵바에서 꺼낸 키린 생차의 차가운 유리병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찌릿한 냉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분명 배는 전혀 고프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던 친구는, 정작 로비를 나서기도 전에 옆 편의점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냈다. 우리는 홀린 듯 편의점으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엔 비닐봉투가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며 기분 좋은 소음을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늘 밤 우리가 누릴 작은 사치에 대한 예고편 같았다.
비닐봉투 속에 숨겨진 사소한 진실들
방 문을 여는 순간, 마치 거대한 화물 컨테이너의 단면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금속성 인테리어와 대비되는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전리품처럼 사 온 편의점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았다. 짭조름한 튀김 냄새와 달콤한 밀크티 향이 순식간에 방 안을 채웠다.
"야, 너 아까 배 안 고프다며. 기억 상실증이라도 온 거야?"
"안 고프다고 했지, 못 먹겠다고는 안 했어. 이건 그냥 너랑 같이 있어 주는 예의지."
"예의가 너무 과하네. 벌써 반 넘게 먹었잖아. 입가에 소스 다 묻었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서로의 모순을 꼬집었다. 방 한구석의 안장 모양 의자에 앉으려다 중심을 못 잡고 휘청이는 친구의 모습에 한참을 웃음을 터뜨렸다. 투박한 개방형 옷걸이와 구식 버튼식 전화기 같은 무용한 물건들이 오히려 이 공간의 정체성을 완성하고 있었다. 작업복 주머니를 닮은 컵 홀더에 음료를 꽂아두고, 우리는 최근 읽은 책과 회사에서의 짜증 섞인 일상, 그리고 내일의 무계획한 여정을 늘어놓았다. 밖에서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울었지만, Jie Si Lv Tai Bei San Chong Guan의 포근한 공기 속에서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금속의 차가움이 오히려 우리의 온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밤이었다.
포만감 끝에 찾아오는 다정한 정적
빈 봉투들이 구겨진 채 테이블 위에 흩어졌다. 소란스러웠던 웃음소리도 어느덧 잦아들고, 네 벽으로 둘러싸인 금속성의 공간에 낮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바스락거리는 침구의 촉감이 피부에 닿았고, 몸이 깊숙이 파묻히는 안락함에 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베개 선택 서비스로 고른 베개가 목의 곡선을 빈틈없이 받쳐주어, 하루 종일 긴장했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천장을 바라보자 은은한 조명이 번져나갔다. 단단한 철제 프레임 안에서 느끼는 이 역설적인 부드러움은 마치 거친 세상 속에서 찾은 작은 은신처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대단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그저 좁은 방에 함께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12월의 긴 밤이 방 안을 천천히 채워갔고,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적당한 피로감이 밀려오며 잠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소리는 누군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는 소리였다.
옅은 스탠드 불빛이 방 안의 정적을 느릿하게 채우고 있었다.
-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정의북로 근처의 '제9역' 훠궈를 추천한다.
- 로비 스낵바의 키린 생차는 차갑게 마실 때 가장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