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프런트에 맡기고 온 우리들
"야, 너 진짜 이걸 다 먹겠다고? 양심 어디 갔냐?"
"양심은 체크인할 때 프런트에 맡겼어. 이건 류허 야시장의 예의라고!"
"예의 좋아하시네. 아까 붕어빵 세 개 해치울 때부터 알아봤다."
"그건 입가심이었지! 원래 메인은 지금부터라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눅눅한 밤공기에 섞여 흩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식탐과 멍청함을 안주 삼아 걷고 있었다. 12월의 가오슝은 계절이 이름을 잊어버린 도시 같았다. 반팔 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튀김 냄새와 정체 모를 향신료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투덜거림은 습관이었고, 웃음은 반사적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깎아내리면서도 발걸음은 정확히 Jie Si Lv Gao Xiong Zhan Qian Guan을 향하고 있었다. 가오슝역에서 내려 짐 가방 바퀴가 보도블록에 부딪히며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마치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리듬처럼 들렸다.
무용함이 허락된 쾌적한 도피처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건네받은 시원한 레몬물 한 잔이었다.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내는 상큼함에 야시장의 기름진 여운이 사라졌다. 객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서늘한 냉기와 빳빳하게 정돈된 침구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Jie Si Lv Gao Xiong Zhan Qian Guan의 객실은 우리 셋이 뒹굴기에 충분할 만큼 넉넉했다. 특히 벽면을 채운 감각적인 벽화는 무채색의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그 예술적인 선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로소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묵직한 목재 가구들이 내뿜는 차분한 분위기는 우리의 소란스러움을 부드럽게 흡수했다. 손끝에 닿는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감촉과 창밖으로 길게 늘어진 오후의 햇살. 21도의 적당한 온도는 우리를 기분 좋게 나른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다채로운 색감의 채소들이 가득한 더블 베지 뷔페 접시를 앞에 두고 우리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브로콜리가 낯선 도시의 공기와 만나 특별한 맛을 냈다. 씹는 소리와 낮은 웃음소리가 섞인 그 무용한 시간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밀도 높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짜는 대신, 그냥 조금 더 게으르게 머물기로 했다.
천장의 그림자를 세며 나누는 진심
"내년에도 올까?"
"글쎄. 그때 네가 백수가 아니면 오겠지."
"말 예쁘게 안 하냐? 그래도 이번 여행은 진짜 좋았어."
"나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좋았던 거겠지. 솔직히 말해봐."
방 안의 조명을 낮추자 공간의 색이 바뀌었다. 낮의 소란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조금 더 진솔해진 목소리들만 남았다. 따뜻한 노란 조명이 방 안을 감싸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나, 사실 요즘 좀 버거웠거든."
"알아. 너 공항 올 때부터 눈 밑이 퀭하더라."
"근데 그냥 여기 누워 있으니까, 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원래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게 여행의 완성이지."
우리는 섣부른 위로 대신 나란히 누워 천장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가오슝의 선선한 밤공기가 포근한 이불처럼 우리를 감싸 안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밤이었다.
내일은 보어 2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다시 소란스러워지기로 했다.
- Jie Si Lv Gao Xiong Zhan Qian Guan의 감각적인 벽화 앞에서 인생 사진 남기기.
- 류허 야시장에서 이름 모를 간식을 시도하며 양심 잠시 내려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