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온 거야?" 친구의 당황한 목소리가 좁은 의사 골목의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눅눅한 시멘트 냄새와 빛바랜 간판들이 어지럽게 섞인 골목 끝에서 비로소 싼훠 호텔의 고즈넉한 외관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허탈함과 안도감이 섞인 헛웃음을 터뜨렸다. 계획된 경로를 완전히 벗어났기에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던, 예상치 못한 환대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붙잡은 것은 기하학적인 원형 창문이었다. 창틀 너머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속에 먼지들이 느릿하게 춤을 추고, 물결 모양의 난간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의 파도처럼 보였다. "꼭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최신식 호텔의 매끈한 통창 대신, 적당히 가려진 시야가 주는 아늑함이 낡은 벽지의 쿰쿰한 세월 냄새와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불이방에서 갓 구워낸 단황수를 한 입 베어 물자, 짭조름한 노른자와 달콤한 붉은 콩 앙금이 혀끝에서 진득하게 엉켰다. 그 순간, 친구의 하얀 셔츠 위로 노란 가루가 툭 떨어졌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5월의 눅눅한 바람이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입안에 남은 달콤한 잔향과 엉망이 된 셔츠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오후였다.
해 질 녘 올라간 루프탑 테라스에는 장마를 앞둔 창화의 묵직한 공기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피부에 닿는 습도는 높았지만, 주황빛으로 물드는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기대어 서 있자니 묘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여기 진짜 조용하다." 누군가 나지막이 뱉은 말조차 소음처럼 느껴질 만큼, 우리는 억지로 대화를 채우지 않는 침묵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가려져 있던 욕실 문을 열자, 눈부시게 하얀 타일과 강력한 수압의 샤워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의 긴장을 녹여낼 때, 낡은 외벽을 고집하면서도 내부는 세심하게 가꾼 운영자의 다정한 고집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우리들의 관계가 이 공간의 온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몽글해졌다.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의 풍경이 될 때
특별한 목적지도, 거창한 깨달음도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싼훠 호텔의 물결 모양 난간을 손끝으로 훑던 서늘한 감촉과 테라스에서 나누었던 짧은 농담들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다.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낡은 창문 너머의 정물화 같은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곳에서 우리가 서로의 민낯을 가장 편안하게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용한 시간들이 모여 가장 밀도 높은 기억이 된다는 것을, 창화의 좁은 골목 끝에서 다시금 배웠다.
낡은 열쇠를 반납하고 나오는 길, 5월의 볕이 등 뒤를 다정하게 밀어주고 있었다.
- 식후에 '아삼 육원'의 바삭한 튀김 육원을 곁들여 보길 권한다.
- 지도를 끄고 의사 골목의 이름 모를 작은 가게들을 천천히 걸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