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스테이 액티브' 에너지 백팩을 메고 포르테 호텔 장화의 로비를 가로질러 달린다. 아이의 작은 등 위에서 가방이 리듬감 있게 덜컹거리고,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로 운동화 소리가 경쾌한 타악기처럼 울려 퍼진다. 로비의 서늘한 공기가 아이의 뺨에 닿아 발그레하게 물든다. 운동을 권장하는 호텔의 취지는 좋으나, 정작 아이에게 이 가방은 보물 상자거나 혹은 멋진 거북이 등껍질 같다. 체크인 카운터 주변을 세 바퀴나 도는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는 쉼 없이 움직여야 하고, 누군가는 그 궤적을 관찰하며 가만히 서 있는 것, 그것이 여행이 가진 가장 완벽한 균형이라고.
고급 4인실의 문을 열자 탁 트인 공간이 우리를 맞이한다. 네 사람이 누워도 서로의 숨소리가 방해되지 않을 만큼 넉넉한 거리감. 침대에 몸을 던지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어깨의 근육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9월의 장화는 낮 동안 끈적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실내의 일정한 온도는 피부를 보드랍게 감싼다.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닿을 때마다 마음속의 소음들이 하나둘 고요해지는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그냥 이렇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된 기분이다.
10층 셀프 세탁실로 올라가면 세탁기가 돌아가는 규칙적인 진동음이 발바닥을 통해 묵직하게 전해진다. 웅웅거리는 낮은 기계음과 젖은 옷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소음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힌다. 여행 중 쌓인 옷가지들을 처리하는 일은 지루한 가사 노동 같지만, 갓 세탁된 수건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세제 냄새는 정직하고 깨끗하다. 아이들은 세탁기 유리창 너머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옷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정지된 듯한 회전 속에 잠시 세상의 모든 소란함이 멎는다.
조식 뷔페에서 따뜻하고 묽은 죽 두 그릇을 비웠다. 온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밤새 식어 있던 속을 부드럽게 데운다. 포르테 호텔 장화을 나서 맛본 장화의 육원은 쫄깃함의 정점이었다. 진한 갈색의 달콤하고 끈적한 소스가 입술에 닿고, 씹을 때마다 대나무순의 식감이 툭툭 터지며 입안을 즐겁게 한다. 너무 달지도, 너무 짜지도 않은 그 절묘한 경계의 맛. 이어 부얼팡에서 갓 구워낸 계란 노른자 빵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혀끝에서 부드럽게 으깨지는 노른자의 질감은 마치 구름을 베어 문 듯 폭신했다.
수삼림 농장의 낙우송 숲길을 걸었다. 9월의 햇살이 촘촘한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져 내려, 바닥에 불규칙한 빛의 조각들을 뿌려놓는다. 호수 위에 비친 붉고 푸른 나무들의 그림자가 물결을 따라 천천히 일렁이며 수채화처럼 번진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작은 돌을 던지며 동그란 파동을 만든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무수한 원들. 그 단순한 반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거창한 풍경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발밑에 밟히는 눅눅한 흙의 촉감과 뺨을 스치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이미 충분한 위로였다.
방에 돌아오니 정갈하게 놓인 웰컴 쿠키와 음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가지런히 놓인 모양새에서 머무는 이를 향한 다정한 배려가 느껴진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를 뜯어 입에 넣자 진한 버터의 달콤함이 혀끝에 닿는다. 아이들은 쿠키 하나를 두고 누가 더 큰 조각을 가졌는지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한다. 그 사소하고 무용한 논쟁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런 작은 친절들은 대단한 감동은 아니어도, 우리가 머무는 이 공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만든다.
밤이 깊어지자 네 식구가 커다란 침대에 옹기종기 모였다. 에어컨의 낮은 웅성거림만이 방 안의 정적을 채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조각조각 이야기한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냥 걷고, 먹고,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주는 안도감이 무엇보다 컸다.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나 역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더 이상 어디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주는 평온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맞잡은 아이의 손이 유난히 따뜻했다.
- 아이와 함께라면 수삼림 농장의 낙우송 길을 천천히 걸으며 빛의 조각을 찾아보길 권한다.
- 10층 세탁실에서 짐을 가볍게 비우고, 장화 시내의 쫄깃한 육원을 맛보며 미식 여행을 즐겨보라.